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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200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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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마귀와 협상하지 않았습니다(하종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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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와 '노동자'의 차이
'근로자'는 노동법에서 주로 사용되는 좁은 의미의 단어로서 "임금을 목적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사전적 정의도 매우 간단하다. 반면 '노동자'는 더욱 폭 넓은 뜻을 갖고 있는 단어이다. 백과사전에서 '노동자' 항목을 찾아보면 노동법상의 '근로자' 의미를 포함하여 "자본주의 발생과 더불어..." 등으로 시작하는 아주 긴 설명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정확한 단어는 '노동자'이다. 80년대 초, 제5공화국 정부가 정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행정부서 명칭을 '노동부'라고 붙인 것이나 정부 각 산하기관의 이름이 '노동연구원', '노동교육원', '노동위원회', '노동사무소' 등 모두 '노동'이란 단어만 사용한 것을 보면 '근로'보다 '노동'이 뭔가 더 품격 있는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마 노동부장관도 자신이 '근로부장관'이라고 불리기는 원치 않을 것이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인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과격하다고 느끼고 '근로'라는 단어를 훨씬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올바른 정서가 아니다. '노동'이란 단어를 굳이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북측에서 주로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북측 사람들이 '근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사무직 노동자들을 '근로 인테리'라 부르고 '노동자'와 '근로 인테리'를 합하여 '근로대중' 또는 '근로계층'이라고 표현한다.
'노동'이란 단어를 굳이 어색해하거나 과격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을 눈살 찌푸리며 보는 시각에는 '노동'이란 단어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야구선수협의회를 둘러싼 해프닝
프로야구 창설 19년만인 2000년 1월 19일 프로야구 8개 구단 350명 선수들이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성명서를 발표하자 프로야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구단과 KBO는 “프로야구 일정 중단”, “선수협 선수 전원 방출 결의”, “선수협 미가입선수로만 시즌 강행” 등 초강수로 대응했다.
MBC '정운영의 100분 토론'에서 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주제로 선택됐다. 구단측을 대표해 참석한 KBO의 사무차장 이상일은 선수협 회장이었던 송진우 선수에게 "당신들이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이 선수협의회냐, 아니면 선수노조냐? 솔직히 말하라"고 다그쳤고 송진우 선수는 "노조는 아니다. 협의회일 뿐이다"라고 답했다. 그 답에 대해 이상일 사무차장은 "그렇다면 내가 지금부터 선수협의회가 사실상 노조라는 증거를 대겠다."면서 준비했던 자료를 조목조목 읽어나갔다.
"첫째, 가입원서를 받는 것등 선수협의회의 설립이 공개적이 아니라 은밀히 '비밀'리에 추진되었다.
둘째, 창립대회를 하는 날, 일부 선수들을 납치하듯 차에 태워가는 등 '폭력'을 일삼고 있다.
셋째, 자신들의 주장을 '과격'한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과격한 표현'의 증거로 선수협이 발표했던 홍보물 몇 대목을 인용하기까지 했다.)
넷째, 이 사건에는 분명히 '배후'가 있다. 외부세력의 지시에 따라 생각 없이 따라다니고 있다.
따라서, 현재 협의회는 노조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나... 도대체 이 나라가 백성들에게 '노동조합'을 무엇이라고 가르쳐왔는지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국민들은 <노동조합>을 "비밀이 많고, 폭력을 일삼으며,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고, 배후가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년 세월 동안 제도 언론과 제도권 교육이 국민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토론을 진행하던 정운영씨가 이상일 차장에게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 선수협의회가 노조라는 증거입니까?"라고 물었고 이상일 차장은 당당하게 "네"라고 답했다. 정운영씨가 "노동조합에 대해 뭔가 큰 오해를 하고 계시군요."라고 말했는데, 어느 언론은 또 이 말을 놓고 "정운영씨가 선수협에 유리하게 편파적인 진행을 했다"고 평했다. 아, 대단한 대한민국 언론이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KBO를 잇달아 방문해서 강력히 항의했고, KBO는 1천만원 이상을 들여 일간지에 사과 광고를 싣는 한편 이상일 차장에게는 감봉 6개월의 징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건 이후 KBO는 선수협 문제에서 완전히 수세에 몰렸다. 이상일씨가 선수협을 편들기 위해 고도의 수를 쓴 것은 아닐까?
어느 종교 지도자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병원에는 염분을 섭취하면 건강에 해로운 ‘저염 식이 환자’들이 있다. 한 병원에서 저염 식이 환자용 물김치에 누가 소금을 집어넣는 일이 벌어졌다.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대부분 경력 10년이 넘은 식당 아줌마들은 “우리들은 그런 실수를 절대로 할 리가 없다. 아무래도 식당 일을 외주로 돌리기 위한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 고의로 소금을 집어넣은 것 같다.”고 했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실제로 상당히 의심이 되는 사람도 있으니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맡기자.”고 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이상하게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아줌마들에게 '살인자'라고 협박을 하더니, 결국 그것이 빌미가 돼 식당 운영은 외주 용역으로 전환됐고 30명 가까이 되는 식당 아줌마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당했다. 환자들에게는 약이나 다름없는 치료식을 이윤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용역업체에 맡긴 것이다.
그 아줌마 노동자들이 복직시켜 달라고 싸운 지 벌써 100일이 넘었다. 수녀님이 원장을 맡고 있는 그 병원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할 때마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펑펑 눈물을 흘리며 운다. 수학여행 가야 한다고 손을 내밀던 아이들이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진다. 식당 일을 해 온 10여년 세월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일인시위를 한다.
아줌마 노동자들이 밤 새 병원 담벼락에 붙인 대자보들을 아침마다 수녀들이 나와서 모두 떼어버리면 아줌마 노동자들은 또 다음날 밤 새 대자보를 붙이고 수녀님들은 아침에 또 모두 떼어내는 일이 몇 번이나 되풀이 됐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점심시간마다 식당 앞에서 선전전을 벌인다. 그분들께 미안하다고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대부분이지만, 관리자들과 의사들은 줄을 서서 밥을 타 먹는다. 병원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접근금지가처분 때문에 자신의 일터였던 식당 문을 잡아보지도 못한 채, 유리문 너머에서 일하는 용역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줌마들은 가슴이 찢어진다.
가톨릭 내에서 웬만한 사업장들의 경영 책임자를 두루 거쳤다는, 자타가 인정하는 유능한 CEO인 원장 수녀는 이미 상당한 저명인사가 된 사람이다. 정치권과 검찰과 정부와 청와대 곳곳에 원장 수녀가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인력 풀’을 갖추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당 대표급 국회의원들, 검찰 수뇌부 간부들, 청와대 요직 인사들과 직접 통화하는 사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원장 수녀는 지방노동사무소장이나 경찰서장급 정도는 잘 상대하지도 않는다. 사건을 처리하는 검찰, 경찰, 노동부의 공무원들은 위의 높은 분들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흡사 거대한 대한민국 국가권력 전체와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노동부 본청의 높은 관리가 원장 수녀를 만나 “노동조합과 좀 협상을 해 보시지요.”라고 권유했을 때, 원장 수녀는 얼굴 표정 하나 흩뜨리지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도 마귀와 협상하지 않았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말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 보수적 신앙과 결합하면, 그때에는 정말 대책이 없다. 노동문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공부를 제도권 교육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 세월동안 언론의 그릇된 보도를 통해 얻은 자신의 노동문제 이해 능력이 얼마나 천박한 수준인지 알지 못하는 인사들이 지도자로 행세하는 사회에서는 헌법상의 권리인 노동조합을 부인하는 것을 일류기업의 경영철학인 양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자랑하고, 그 경영자에게 대학교에서는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코미디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도 마귀와 협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장 수녀도 노동조합과는 협상할 수 없다? 그 말을 예수님이 들었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종교 지도자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한국의 특이한 경제 사회 지표
공무원 노동조합의 주장에 따르면, UN의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해 있는 176개 나라들 중에서 공무원 노조가 불법인 나라는 두 나라밖에 없는데 우리나라가 그 두 나라 중 하나다.
ILO가 세계 주요 36개국 노동시간 통계를 발표했을 때, 주당 노동시간 항목에서 한국은 1위를 했다.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세계 최장, 세계 최저와 같은 통계들이 많은 나라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구성원의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인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특별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은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모두 특별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될 수밖에 없다. 몇 가지의 통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살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4위라지만 자살률 증가속도가 세계 1위니까 이대로 내버려두면 곧 세계 정상이 되고 만다. 이혼율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결혼 대비 이혼율이 세계 2위이다. 출산율은 몇 년째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사람들이 됐다. 아기를 낳아 기르기가 세계에서 가장 겁나는 사회가 됐다는 뜻이다. 도대체 다른 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기 때문일까?
아기들이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정도 자라면 한 달 병원비가 대략 2천만 원, 3천만 원 정도 나온다. 부모가 처음에 한두 달은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빚을 내고 전세 보증금도 빼내면서 그 병원비를 감당하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아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의사한테 각서를 한 장 제출하고 아기를 퇴원시키는데, 그 아기들이 대부분 그 다음 날 사망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수없이 생기고 있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문명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불평등이다. 인류 사회가 100년, 200년쯤 전에 중세 봉건시대에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상으로 구별되던 것보다 더 심각한 차별이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갖고 태어난 아기들이 같은 상태로 태어났는데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기는 살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기는 죽어야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근대국가라면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불평등이다.
자유경쟁사상이 우리보다 더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일본에서조차 - 자유경쟁사상이란 똑똑한 사람은 경쟁에서 이겨서 잘살고, 못난 사람은 경쟁에서 져서 못사는 것이 용납되는 사고방식이란 뜻이다 - 모든 아기들은 태어난 뒤 2년 동안은 정부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한다. 최소한 그렇게 해야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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